[부일시론] 민영화 파문, 그들만의 짐인가?
/공선옥, 소설가/
얼마 전 기차를 타고 서울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날따라 유독 기차가 역이 아닌 철로 위에서 자주 멈추었다. 안내방송에서는 '우리 기차 철로보수관계로 잠시 정차한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하도 자주 이 안내방송이 나오자 어느 승객이 그만 기차 승무원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이 승객이 승무원에게 하는 말이,당신이 만약 제시간에 닿아야 하는 비즈니스 때문에 이 기차를 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그때 승객이 움켜잡고 있는 승무원의 조끼에 쓰여진 '저지 민영화,사수 생존권'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철로보수 관계로 기차가 그토록 자주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바로 철로 보선원들의 인력을 감축한데 따른 상황이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하려다 보니 자연 기차를 자주 멈추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7년부터 추진된 철도청의 인력감축은 주로 하위직 기능인력을 중심으로 이뤄져 약 7천명이 철도청을 떠나야 했고 그로 인해 남은 사람들은 현장에서 '열차감시원'도 없이,말하자면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에는 보선원이 작업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 있는 철도청에 지금 또다시 민영화바람까지 불고 있다. 만약 민영화가 된다면 지금까지 진행된 감축의 규모를 훨씬 넘는 인력들이 또다시 거리로 내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민영화란 무엇인가. 정부가 맡고 있던 공공부문의 서비스를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자본에 넘기는 것이 아닌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장사를 그만두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철도를 민간자본에 맡긴 뒤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적자노선은 즉각 폐지될 것이다. 공공부문이라 값이 자동차보다 싼 기차에 이동을 의존해왔던,오지에 살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기차를 더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이동비용은 그만큼 증가하게 될 것이다. 오지에 사는 기차통학생은 학교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혹시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맡아야 할 공공부문을 시장의 논리에 움직이는 민간자본에 넘기는 행위는 공공기관에서 일을 해왔던 노동자들뿐 아니라,모든 국민의 일상을 시장의 논리 위에서 움직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꾸 멈추는,아니 멈출 수밖에 없는 기차 안에서 멱살을 잡힌 승무원뿐 아니라,멱살을 잡은 승객에게도 철도 민영화의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멱살을 잡은 승객은 그저 기차가 연착되는 것에만 화 낼줄 알지,철도민영화의 문제에 화낼 줄은 모른다. 결국 자신이 지금 화나는 것이 철도민영화의 문제와 무관하달 수 없는 인력감축에 따른 결과인데도.지금 일상이 불편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이 불편하게 된 연유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어떤 정책의 산물이 아닌가,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우리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것이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데도 신문이나 방송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이 내가 느끼기에,기괴할 정도로 조용하다. 여성 연예인 한 사람의 마약복용문제를 놓고는 나라 안 매스컴과 온국민들이 또 기괴할 정도로 시끄러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예인의 문제는 온국민의 문제고 노동자들의 문제는 단지 노동자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노동자와 농민과 서민이 힘든 사회는 그들의 생산에 기대어 사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은 뻔한 이치인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철도청과 마찬가지로 7천명이라는 사람이 해고된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생존권을 위한 '그들만의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올 12월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가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살펴볼 시간은 있다. 어떤 정당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여기서 정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노동자와 농민과 서민을 배제시키는 정책을 펴는 정권은 권력은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성공한 정권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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