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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진2) 길바닥에서 자고먹는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다. 왼쪽 두번째부터 강윤이, 신광훈, 김달겸씨
지난 3월17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 의료보험회관 앞 잔디밭에 지역의료보험조합 해고 노동자들이 텐트를 쳤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해고 노동자 10여명이 농성에 들어갔다. 노동법에 규정된 월차휴가를 사용한 것이 빌미가 돼 해고된 노동자, 근무시간중에 노조총회를 열었다고 쫓겨난 노동자… . 전국의 의보조합에서 지난 90년 이후 이런 저런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66명을 대표한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3월 “과거 정권 아래에서 노조활동과 관련한 해고 노동자 5천2백명에 대한 복직 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복직의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지쳐버린 나머지 텐트를 쳤다. 마지막 선택인 셈이다. 길바닥에서 자고 먹는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해고 생활에 비한다면 동료들과 함께 복직의 희망을 품을 수 있어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외롭고 고통스러운 해고 생활에 신물이 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강윤이씨, 올해 서른살 먹은 처녀다. 동료들의 만류로 밤샘농성을 하지 않고 대신 매일 인천에서 이곳으로 ‘출근’을 한다.
93년 소송에서 승소판결
89년 도시에 의보조합이 생기자 인천시 북구 지역의보에 입사했다. 의보에 들어가면 좀 더 나은 생활이 보장될 것 같아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의보 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민원에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예산이 안 잡혔다”는 이유로 월급은 고작 15만원이었다. 하지만 보람으로 참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지역의보가 없었으면 수술을 받지 못할 형편이던 할머니가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 고맙다고 할 때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이런 보람으로 정신없이 일을 했다. 회사에서‘성실한’직원으로 소문도 났다.
해고는 예기치 않게 닥쳤다. 91년 사쪽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노조비 일괄공제를 거부하고 노조전임자 복귀를 지시하는 등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는 법적 절차를 밟아 파업에 들어갔다. 강씨도 노조가 옳다는 생각에 파업에 가담했다. 그해 11월 인천지역의 노동자 16명이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해고됐고 그도 포함됐다.
“말도 안되는 해고였어요. 회사간부가 미안하다고 말하더군요. 회사기물이나 때려부수고 해고됐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텐데… .”해고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의보로 돌아가고 싶었다. 해고무효소송을 내고 노조로 출근을 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미 와해 일보직전이었다. 2백명이 넘던 조합원이 7명만 남아 있었다.
노조도 지켜야 했고 먹고사는 일도 급했다.“예고없이 닥치는 해고는 간접살인이나 마찬가지죠. 혼자 몸이면 그런대로 견딜만 하지만 가족이 있으면 그 고통은 말로 다 못해요. 해고 당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막노동판을 전전한 동료도 있었어요.”흩어지면 끝장일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해고된 동료 7명과 함께 퇴직금이라고 받은 돈을 몽땅 모았고, 이 돈을 자본금 삼아 새벽에 아파트에서 세차하는 일을 시작했다. 추운 겨울 찬물에 손을 담그는 일은 힘들기만 했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됐다. 그러나 경험도 없는 데다 마침 겨울이라 세차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3달 만에 돈을 까먹었고 다른 호구지책을 찾아 나서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쪽은 노조 사무실마저 내놓으라고 했다. 노조 사무실 보증금을 빼가 버렸다. 노조마저 놓쳐 버리면 영영 의보로 돌아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동료들과 함께 다시 돈을 모아 2평짜리 창고를 얻어 노조 간판을 내걸었다.
호구지책 마련, 노조일, 소송 등 고단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왔다. 93년 10월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말 그대로‘미칠듯이’기뻤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복직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희망은 여지없이 깨졌다. 대법원 판결을 보자는 회사쪽의 냉담한 반응이었다. “해도 너무 하더군요. 그런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어요. 마침 의보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복직싸움을 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모였고 농성을 시작했어요.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단 하루 월차 냈다가 잘려
김달겸씨,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덕에 장가도 못간 서른다섯살의 노총각이다. 전국지역의보 해고노동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농성을 하면서 삭발을 했고 단식을 하고 있다.
90년 5월 경남 거제 의보에서 법에 보장된 월차휴가를 따내기 위해 단 하루 월차휴가를 썼다가 해고됐다. 언젠가 의보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의 모임에 갔다가 서너명이 모여 술이나 마시며 피곤한 삶에 대한 푸념이나 하고 흩어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데 힘을 모아 복직싸움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이러다가는 죽어도 복직은 못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법에 호소해 승소를 해도 사업주들은 보사부의 눈치나 살피면서 복직을 질질 끌었어요. 그러는 동안 동료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지쳐가는 실정이었지요. 한데 뭉쳐 보사부와 싸우지 않는 한 복직은 단지 ‘희망사항’으로 끝날 것 같더군요.”
지역의보조합은 전국에 모두 2백66개가 있다. 각각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실질적 운영은 보사부가 관장한다. 인사권 등도 명목상 지역의보의 대표이사가 가지고 있을 뿐 그동안 보사부가 쥐락펴락해왔다. 그래서 지역의보의 대표이사들은 법원의 승소판결을 받아 복직을 신청한 해고 노동자에게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다”“보사부의 결정에 따라 물꼬만 트이면 앞장서 복직시키겠다”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김씨는 “뭉쳐야 복직할 수 있다”며 해고된 동료들을 만나러 정신없이 다녔다. 성과는 있어 40여명의 동료들이 모였다. 농성을 시작하기로 했다. 복직교섭에 나설 것을 보사부를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그러나 보사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노조꾼들을 복직시키면 의보가 또 시끄러워진다”는 게 보사부의 입장이다.
농성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한달 보름이 넘은 길바닥 생활이 고달프지만 견딜만 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의보 동료들이 보내주는 성원이 큰힘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복직의 꿈을 꾸며 집에서 생이별의 아픔을 꼽씹고 있을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떨구어진다고 한다.
“뭉쳐야 돌아갈 수 있다”
신광훈(34)씨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의보노조 인천 동구 지부장을 맡았던 신씨는 91년 5월1일 파업에 들어가기 4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파업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직장으로 돌아왔다. 신혼의 단꿈은 깨져버렸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는 신세가 됐다. 텐트를 챙겨들고 아내와 함께 오대산으로 달아났다. 산생활 3개월, 그러나 신씨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해 9월에 구속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출소했으나 신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고통지서였다. 신씨와 같은 직장이었던 아내도 상사들의 눈총에 못이겨 사직서를 내야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책임은 생각보다 무거운 짐이었다. 쌀배달을 하고 막일을 하는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했다.
“해고생활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별다른 이유없이 임신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올해 1월 어렵게 얻은 아들이 돌을 맞았습니다. 아들이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단란한 가정을 꾸미기 위해서도 이제는 직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복직이라는 선물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텐트를 치우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텐트농성은 의보 해고 노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한진그룹 39명, 기아 37명, 태평양 13명 등 해고됐다가 아직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 3천여명을 대표한 노동자들이 전국적으로 20곳에서 텐트를 치고 거리생활을 하면서 복직을 바라고 있다.
(사진1)
그들은 '복직'이라는 선물을 들고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가족과 '생이별'하여 텐트를 쳤다. |
